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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Jun Young Hong

우리 연구실에서 연구하는 큰 주제중 하나는 ‘발달 프로그래밍’ 가설이다. 쉽게 말해서 생애 초기의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평생동안의 몸의 특정 기능의 강화 혹은 약화가 나타나 건강과 질병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이미 발표했던 연구에서는 생애초기 엄마의 스트레스가 자손에게 장기적 영향을 주었다. 쥐를 이용한 이 연구에서는 엄마쥐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많이 분비되고, 이는 태아의 내분비계에 영향을 주어 평생동안의 코티솔 호르몬의 양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그 결과, 자손 개체의 면역 기능의 약화가 나타나서 뱃속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에 노출되었던 개체는 평생동안 감염에 취약해지고 또 암에도 취약해지게 되었다.


세미나를 통해 이러한 내용에 대해 발표를 하면, 어떻게 생애초기의 경험이 그렇게 오랫동안 영향을 줄 수 있을 지에 대해서 많은 질문을 받는다. 또한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이렇게 결정되어버리면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듣곤 한다. 우리 연구실에서 고민하는 부분도 바로 이것이다. ‘어떻게' 이런일이 가능한 지에 대한 mechanism에 대해서 그리고 그 의미, 즉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지, 또 이것이 개체의 생존에 주는 유익은 무엇인지 많은 논의를 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autonomy (자율성 혹은 자립성)를 가진 많은 시스템들은 초기 조건에 민감한 경향이 있다. 사회적으로 보면 어떤 조직이 처음 형성될때 만들어진 구조나 문화가 굉장히 오랫동안 유지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시스템 밖에서 보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들지만, 막상 들어가면 똑같아 지게 되는 것은 특정한 방향으로 '구조'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구조의 형성 과정은 유기적인 과정이지만, 구조가 형성될 당시의 초기 조건의 영향을 많이 받게 마련이기 때문에, 초기 조건에 의한 장기적인 영향이 관찰 될 수 있다.


집을 예로 들어 생각해보면 구조가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볼 수 있다. 집이 설계되는 과정에서는 신중해야 하는데, 이때의 결정이 잘못되면 나중에는 바꿀 수 없는 일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추운 지방에 집을 지을 때, 날씨가 추울 것으로 생각해서 벽난로가 여러 개가 있도록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구 온난화로 날씨가 전혀 춥지 않다면 많은 벽난로가 불필요해지겠지만 집을 다시 짓지 않는 한 바꿀 수 없게 된다.


생물에게 있어서 사실 가장 필수적인 생존 요소는 다변하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유연성 혹은 가소성(plasticity)이다. 그래서 사실 생애초기에 무엇인가가 고정되는 것이 꼭 생존에 유리하지 않을 수 있다. 이후의 환경이 초기의 환경, 혹은 예측한 환경과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애초기의 환경이 장기적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결국 이러한 가소성도 특정한 구조 위에서 형성되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특정한 구조가 형성되는 시기가 생애초기이기 때문이다.


발생과정은 구조를 만드는 것과 같다. 이러한 구조는 DNA상의 설계도를 따라 지어지기도 하지만, 발생시기의 외부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달라질 수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예가 신경계의 발달이다. 신경계에서는 생애초기의 발달 과정을 통하여 일종의 구조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 때 외부 환경이 신경계 구조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신경계를 통한 특정 기능들 중에는 발달 시기를 놓치면 다시는 반복되지 않은 critical period (임계기)를 가진 기능들이 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언어, 악기, 스포츠와 같은 부분을 담당하는 뇌의 기능 들이다. 어린 아이들의 언어의 습득력은 성인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른데, 어린 시기의 뇌가 언어 발달의 임계기이고 언어 자극에 의해서 특정 구조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 시기가 지나면 (언어의 경우는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일단 형성된 구조 위에서 기능을 발달 시켜야 하기 때문에 변하기 어렵게된다.


우리 연구실의 가설은, 신경계 뿐만아니라 우리 몸의 많은 생리적 시스템들에도 이들의 기능을 결정하는 구조들이 존재하며, 생애초기가 이러한 구조 형성의 임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별히 면역계와 내분비계, 대사체계를 중심으로 접근하고 있다. 일단 어떤 식으로 구조가 형성되며, 왜 유지 될 수 있는 지 알면, 발생과정에서 독특하게 일어나는 일들을 모사하여 특정 기능의 구조를 바꾸거나 역전시킬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접근은 기존과는 다르기 때문에 각종 질환 치료에 있어서 새로운 접근법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작성자 사진Jun Young Hong

앞의 글에서는 흙 속의 진주를 발굴하려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았다면, 이번에는 진주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려고 한다.


진주는 바로 지금의 트레이닝을 받고 있는 학부생, 대학원생, 연구원들이다. 이들중 정말 진주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던 구조적 문제 때문에 기회를 얻지 못해서가 아니라, 진로의 불확실성 때문에 다른 길을 택하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특히 학부생들을 상담하다 보면, 대학원에 대해서 생각은 해보지만 미래가 불투명해 보여서 다시 시험을 쳐서 의약학쪽으로 진로를 정하려 한다든지 하는 모습을 보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말 생명과학의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다.


사실 세상에 영원히 안정적인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확률적으로 그럴 수 있는 것일 뿐이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과거'에 그러했을 뿐이다. 1980년대의 가장 안정적인 직업과, 2000년대의 안정적인 직업과, 2020년대의 안정적인 직업은 상당히 다르다. 거기에 더해서, 현재 우리는 정말 중대한 변화가 시작되는 변곡점에 서있다. ChatGPT를 통해 모두가 약간 맛을 보고 있는 혁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며, 앞으로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바꾸게 될 것이다.



그 동안 기초과학에서의 혁신은 기술의 혁신으로, 또 기술의 혁신은 새로운 산업으로 연결되어 왔다. 예를 들어, 20세기 초 기초 물리학의 발달은 우주 기술의 혁신으로 연결되었고, 이는 그대로 항공 산업으로 연결되었다. 시간차를 두고 일어나는 일이지만, 기초 과학-기술-산업으로 연결되는 흐름은 자명하며, 이 흐름은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인공지능의 혁명을 생각해보면, 이는 사실 기초과학보다는 기술적인 혁명이다. 이러한 기술적인 혁명은 역으로 기초과학의 혁신으로 연결되어왔다. 작년 노벨상을 수상한 스반테 페보 박사의 고인류학 연구가 대표적인 예이다. Next generation sequencing과 같은 기술의 혁명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고, 사실은 기술의 혁신이 노벨상을 낳은 것이다. 또 현재 Cryo-EM과 같은 기술의 혁신이 기초 과학의 새로운 발견으로 연결되고 있다. 어쨌든 이러한 기술의 혁신은 기초과학의 혁신으로 다시 선순환되고, 이를 통해 결국은 또다른 기술의 혁신과 산업의 발전으로 연결되게 될 것이다.


생명과학은 이 사이클에서 어디쯤 와 있을까? 지금까지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면, 이미 기술에서 산업으로 넘어가는 일들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 같다. 과거 약 20년 동안은, 기초과학에서 기술로 연결되는 시기였고, 그러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산업이 없어서 말그대로 대학원생들의 진로가 불투명했다. 그러나 이제는 산업이 생겨나고 있고, 또 현재 일어나는 앞으로 가속도가 붙게 될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생명과학자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 오히려 기술 혁신의 변곡점에서 더 많은 기회가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진주가 영원히 조개속에서 안전히 살 수도 있겠지만, 그곳을 빠져 나와 더 밝은 곳에서 빛을 비출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전처럼 이 진로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막연한 생각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하지 못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작성자 사진Jun Young Hong

매년 가을이면 노벨상 발표가 있다. 매년 노벨상 시즌만 되면 어김없이 왜 우리나라의 과학자들은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하는지에 대해 아쉬워하는 기사가 나온다. 그 동안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던 일본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더욱 사람들은 아쉬워하고, 정부 차원에서의 많은 노력 기울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연구 수준의 격차는 많이 메워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혁신'에 방점을 두는 구조나 문화는 아직 부족해 보인다.


우리나라의 장점은 어찌되었든 시행착오를 겪어 가면서 정반합으로 조금씩 발전을 한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정부 과제의 양상이 기존에 비해 긴호흡으로 할 수 있고, 과정중에 기다려주는 기초 연구비들이 있어 감사한 것 같다. 그래도 좀 더 혁신에 방점을 두기를 원한다면, 소수의 탑 연구자들에게 연구비를 몰아주는 것보다는-비록 눈에 잘 띄고 성과를 과시하기 어려울 지라도- 가장 아이디어가 많을 아직은 성장하고 있는 신진연구자나 연구원들에게 많은 지원이 있어야 할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만큼 중요한 것은 공정한 시스템인 것 같다. 한국의 양궁이 세계적인 탑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이유도, 또 역으로 국가 수준의 투자에도 불구하고 중국 축구가 계속 월드컵에 실패하는 이유도, 공정한 시스템의 유무에 있다. 양궁의 국가대표 선발은 공정함을 넘어서 매몰차지만, 과거의 기록보다도 그 시기의 가장 컨디션이 좋은 선수들이 선발될 수 있어, 세계적 경쟁력을 유지하게 된다고 한다. 중국 축구의 경우, 자국 리그의 연봉 인플레등과 맞물려 축구 선수가 하나의 안정적인 직업이 되면서, 자본의 논리가 들어가기 시작했고, 실력보다는 인맥과 돈이 우선되면서 경쟁력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중국의 수많은 인구 중에 분명히 축구를 훨씬 잘할 수 있는 신체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많겠지만, 유소년 시기 부터 재력과 인맥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기회조차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좋은 선수들이 성장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투명하고 공정한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아무리 흙속의 많은 진주들이 있다 한들, 발굴될 기회가 없다. 사실 노벨상 수준의 혁신을 원한다면, 이는 main stream (주류) 에 있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이곳의 진주들은 여전히 흙이 묻어있는 채의 날것 상태라서 fancy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잠재력만을 보고 투자하기 위해서는, 다른 요소들의 제약을 덜 받을 수 있는 투명하고 공정한 시스템이 뒷받침 되어야 할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길을 가는 과학자들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할것이다. 적어도 일본이 우리와 다른 점은 그것이다. 그들은 한 길을 꾸준히 걸어가는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할 수 있다. 일본에서 꾸준히 노벨상이 나오는 이유도 트렌드나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꾸준히 한 길을 걸어가는 연구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사회적으로 격변을 겪으며, 고도 성장을 해왔던 나라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새로울 것을 요구 한다. 물론 이것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무엇인가를 계속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K-pop과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세계시장에서 우뚝 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학에 있어서는 새로운 연구 분야를 열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와 동시에 깊이가 있어야 한다. 깊이가 없이 새로운 개념만 제시한다면 이론이 아니라 가설로만 남을 뿐이다. 그래서 한 방향으로 꾸준히 걸어가는 것이 또한 필요하다.


이러한 부분들이 여러 시행착오 이후에 균형을 잡고 잘 세워져 간다면, 한류가 세계를 선도하듯, 연구도 그렇게 될 날이 오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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