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글에서는 흙 속의 진주를 발굴하려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았다면, 이번에는 진주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려고 한다.
진주는 바로 지금의 트레이닝을 받고 있는 학부생, 대학원생, 연구원들이다. 이들중 정말 진주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던 구조적 문제 때문에 기회를 얻지 못해서가 아니라, 진로의 불확실성 때문에 다른 길을 택하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특히 학부생들을 상담하다 보면, 대학원에 대해서 생각은 해보지만 미래가 불투명해 보여서 다시 시험을 쳐서 의약학쪽으로 진로를 정하려 한다든지 하는 모습을 보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말 생명과학의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된다.
사실 세상에 영원히 안정적인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확률적으로 그럴 수 있는 것일 뿐이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과거'에 그러했을 뿐이다. 1980년대의 가장 안정적인 직업과, 2000년대의 안정적인 직업과, 2020년대의 안정적인 직업은 상당히 다르다. 거기에 더해서, 현재 우리는 정말 중대한 변화가 시작되는 변곡점에 서있다. ChatGPT를 통해 모두가 약간 맛을 보고 있는 혁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며, 앞으로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이 바꾸게 될 것이다.
그 동안 기초과학에서의 혁신은 기술의 혁신으로, 또 기술의 혁신은 새로운 산업으로 연결되어 왔다. 예를 들어, 20세기 초 기초 물리학의 발달은 우주 기술의 혁신으로 연결되었고, 이는 그대로 항공 산업으로 연결되었다. 시간차를 두고 일어나는 일이지만, 기초 과학-기술-산업으로 연결되는 흐름은 자명하며, 이 흐름은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인공지능의 혁명을 생각해보면, 이는 사실 기초과학보다는 기술적인 혁명이다. 이러한 기술적인 혁명은 역으로 기초과학의 혁신으로 연결되어왔다. 작년 노벨상을 수상한 스반테 페보 박사의 고인류학 연구가 대표적인 예이다. Next generation sequencing과 같은 기술의 혁명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고, 사실은 기술의 혁신이 노벨상을 낳은 것이다. 또 현재 Cryo-EM과 같은 기술의 혁신이 기초 과학의 새로운 발견으로 연결되고 있다. 어쨌든 이러한 기술의 혁신은 기초과학의 혁신으로 다시 선순환되고, 이를 통해 결국은 또다른 기술의 혁신과 산업의 발전으로 연결되게 될 것이다.
생명과학은 이 사이클에서 어디쯤 와 있을까? 지금까지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보면, 이미 기술에서 산업으로 넘어가는 일들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 같다. 과거 약 20년 동안은, 기초과학에서 기술로 연결되는 시기였고, 그러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산업이 없어서 말그대로 대학원생들의 진로가 불투명했다. 그러나 이제는 산업이 생겨나고 있고, 또 현재 일어나는 앞으로 가속도가 붙게 될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생명과학자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 오히려 기술 혁신의 변곡점에서 더 많은 기회가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진주가 영원히 조개속에서 안전히 살 수도 있겠지만, 그곳을 빠져 나와 더 밝은 곳에서 빛을 비출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전처럼 이 진로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막연한 생각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하지 못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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