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un Young Hong

- 2일 전

얼마 전 Nature Medicine지에 흥미로운 논문이 게재되었다 (Ke et al., Nat Med, 2026). 이는 의학 교육에서 AI가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것이었다. 이 논문에서는 의대생과 초기 수련의들이 AI에 과도하게 의존할 경우, 독립적인 임상 추론 능력을 끝내 개발하지 못할 수 있다는 위험성 — 저자들이 'never-skilling (역량 미형성)'이라고 부르는 현상 — 에 대해 일반적인 학습이론을 기반으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현재의 AI 사용 방식이 장기적인 문제를 초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했다. 그런데 이는 비단 의학 영역만의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논문의 핵심 논리는 사실 단순하다. AI가 잘못된 정보를 주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AI가 배움의 과정 자체를 대체해버리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이다. 지난 몇 달 동안 잘 정리되지 않고 있던 생각들이, 논문을 보면서 정리가 된 기분이었다. AI 시대에 AI툴을 적극 사용하는 것은 권장할만한 일이나, 처음부터 끝까지 AI를 사용하여 강의요약하고, 예상문제를 만들어 공부하고, 심지어 채점까지 하는 이러한 현실 앞에서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그 불편함이 무엇이었는지 잘 짚어준 것 같았다.
정답의 열람과 지식의 '진짜 이해'의 차이
사실 특정 정보에 접근해 사실을 알아내는 것과 그 정보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나타나는 결과는 비슷할 수 있다. 교과서이든, 인터넷 검색이든, AI 툴이든 정확하게 설명된 답을 얻으면 하나의 정보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이해는 아니다.
‘어떤 지식을 정말로 이해하였느냐’를 평가하는 것은 쉽지 않으나 — 사실 객관식 문제를 맞추었어도 이해하지 못한 것일 수 있다 — 해당 지식을 '사고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느냐로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특정 지식이 언제 적용되고 언제 적용되지 않는 것을 아는 것, 오류가 섞인 유사 정보의 미세한 허점을 느끼고 잡아내는 것, 다른 지식과 연결해서 새로운 통찰을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이해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특정 지식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능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Nature Medicine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이는 스스로 씨름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만들어진다. 우리가 사용하는 AI 툴조차도 끊임없는 가중치 교정을 통해 최적화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데, 그의 원형이 되는 우리의 뉴럴 네트워크도 마찬가지이다. 어려운 질문 앞에서 생각하고 깊이 고찰하며, 설명을 시도해보고, 아니면 다시 교정해서 또 시도해보는 이러한 과정, 이 과정을 통해서만 지식이 습득되고 우리의 이해의 신경망 안에 들어간다.
즉, 힘든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힘든 과정 자체가 학습이라는 점인데, 극한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요즘, 이러한 과정을 생략하는 것이 지혜롭게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이 힘든 과정을 건너뛰면, 근본적인 배움조차 되지 않는 never-skilling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는 점이다.
'바람직한 어려움'의 실종과 역량 미형성(Never-skilling)
교육학이나 인지심리학에서 말하는 이론들도 결국 이 지점을 가리키고 있다. 인간의 장기기억 속에 탄탄한 지식의 네트워크, 즉 ‘스키마(Schema)’가 자리 잡기 위해서는, 제한된 작업기억(working memory) 안에서 새로운 정보를 의식적으로 다루고 연결해 보려는 인지적 부담을 어느 정도 감당해야 한다. 이를 ‘바람직한 어려움(Desirable Difficulties)’이라고 부른다. 고통스럽게 오답을 내고 이를 교정하는 ‘생산적 실패’가 있어야만 그 지식이 뇌에 깊이 각인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의 AI는 이 ‘바람직한 어려움’을 너무나 친절하게 제거해준다. 그 결과 학생들은 겉보기엔 그럴듯하게 과제를 해내지만, 실제로는 홀로 추론하는 법을 모르는 ‘가짜 숙련도(False Proficiency)’ 상태에 머물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인지적 Off-loading이 고착화되면, 뇌는 스스로 지식의 뼈대를 구축할 기회를 완전히 잃어버린다. 외부의 도움 없이는 단 한 단계의 추론도 해내지 못하는 아키텍처의 결핍 상태, 즉 논문이 경고한 ‘never-skilling (역량 미형성)’의 늪으로 결국 빠져버리게 되는 것이다.
흔히 AI 시대를 말하는 이들은 "이제 지식을 머릿속에 담아둘 필요는 없다. AI가 주는 답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능력만 기르면 된다"고 쉽게 말한다. 하지만 인지과학의 눈으로 보면 이는 앞뒤가 바뀐 말이다. 머릿속에 구조화된 지식이 없으면, AI가 아무리 그럴듯한 거짓말(할루시네이션)을 하거나 편향된 답을 주어도 그것이 맞는지 틀렸는지 비판적으로 검증하는 것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가하기 때문이다. 비판적 사고의 기준이 되는 비교할 '원본(Baseline)'이 먼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제1원리'로
종종 AI가 몇 초 만에 모든 것을 찾아주는 시대에, 대학 학부에서 왜 여전히 구체적이고 딱딱한 전공 과목들의 디테일을 배워야 하느냐는 무용론을 접하곤 한다. 모든 부분의 디테일을 암기할 필요가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입장이지만, 그러나 학습의 기본적인 원리를 생각해본다면 오히려 정반대의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학부 수준에서 배우는 근본적인 원리에 해당하는 전공 지식의 내용은 오히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원본지식, 도메인의 스키마를 형성하는 재료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MIT나 스탠퍼드 대학교등에서 AI 대전환기 속에서도 도메인 지식의 '제1원리(First Principles)'와 기초 자연과학 교육을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엄격하게 강화하고 나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런 전공의 기초가 되는 과목들에서 다루는 이론과 상세한 내용들은 단순히 시험을 치고 곧 잊어버릴 파편화된 지식을 암기하기 위함이 아니다. 물론 우리가 학습하는 방식 — 예를 들어 AI를 일방적인 정답 도출기로 쓰는 것이 아니라 서로 질문을 주고받는 소크라테스식 문답형 인터페이스로 전환하는 등 — 도 시대에 맞게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하겠지만, 교육의 본질은 결국 변하지 않는다.
가끔은 비효율적으로 보일지라도 학생들이 구체적인 전공의 디테일을 붙잡고 씨름하고 토론하며 인지적 고통을 겪는 시간, 바로 그 시간이 향후 거대한 AI의 결과물들을 주도적으로 평가하고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뇌의 기초 아키텍처'를 세우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이러한 과정은 필요하다.
어쩌면 지금 우리의 강의실이 학생들에게 먼저 제공해야 할 것은 AI를 영리하게 다루는 방법론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근육을 키워낼 수 있는 'AI-Free Zone'에서의 다소 느리고 비효율적인 아날로그적 학습의 시간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