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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외주화

  • 작성자 사진: Jun Young Hong
    Jun Young Hong
  • 7시간 전
  • 5분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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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점.

원래는 수학과 물리학의 용어인데, 현재는 인공지능과 관련하여 많이 쓰이고 있다. 이러한 기술적 특이점은 초인공지능의 등장으로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초월하게 되는 지점을 의미한다. 이러한 예견에 대해 학자들마다 견해가 아직은 많이 다르다. 어떤 학자들은 특이점이 아주 가깝게 왔으며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오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어떤 학자들은 현재의 인공지능 기술은 과장되었고 이미 고점에 도달했기 때문에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전자의 경우, 알파고나 알파폴드와 같이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여겨졌던 영역에서 이미 인간을 초월한 사례가 나오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인공지능은 더욱 가속화된 속도로 똑똑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후자의 경우는 현재 거대 언어 모델 설계의 근본적인 한계 또는 학습 데이터의 부족으로 인해 혁신의 속도가 떨어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무엇이 맞는지는 아직 잘 모르지만, 이미 현 시점의 인공지능 기술이 사회 전반에—특히 로봇 공학과 함께—적극적으로 접목되기 시작하기만 해도 기존의 직업군과 시스템이 급격하게 변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즉, 이미 시작된 변화에 가속도가 더 붙을 것인지에 대한 의견 차이가 있을 뿐이지, 인공지능의 광범위한 영향 자체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공지능 시대, 대학 교육은 여전히 유효한가

이러한 시점에서,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고민이 되는 부분이 많다. 과연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가르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과연 그러한 방식의 가르침이 현재에도 유효하며, 배우는 사람들이 그 가치를 인정해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일례로, 학습 방식은 이미 많이 바뀌었다. 학생들은 강의를 듣는 동시에 음성 녹음과 영상 녹화를 진행하며, 음성 녹음은 실시간으로 스크립트화되고, 인공지능툴은 그것을 요약하고 핵심을 정리해주며, 심지어 예상문제까지 뽑아준다. 학부 수준의 교과서 내용은 ChatGPT 등의 툴도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어, 어쩌면 교수보다 더 맞는 개인 맞춤형 튜터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과서의 내용을 요약·정리해서 PPT 형식으로 학생들에게 강의만 한다면, 어떤 부분에서 더 낫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학습의 내용도 마찬가지이다. 특정 분자의 이름을 암기하는 것과 같이 디테일한 부분에 중점을 둔 학습은 때때로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AI툴들이 훨씬 빠른 속도로 정확한 대답을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계산기가 등장한 이후 주판 방식의 복잡한 계산을 빠르게 하는 것이 의미가 없어진 것처럼, 인공지능이 더 잘 대답할 수 있는 것에 대해 학습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묻게 된다. 만약 의미가 있다면, 어떠한 측면에서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평가도 마찬가지이다. 과거에 주로 사용되던 과제 보고서 제출 형식의 평가는 더 이상 유효하지 못하다. 문제를 학생이 풀었는지 인공지능이 풀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이제 현장에서 빈 종이에 쓰게 하거나, 면접과 같은 방식으로 평가를 하거나, 인공지능 툴의 접근이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져야만 한다.

이러한 현장의 모습을 볼 때, 대학 교육이 여전히 유효하며 근본적인 경쟁력을 키워줄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하게 된다. 대학 교육의 유용성은 인공지능의 사용이 사회 전반의 뉴노멀이 된 이후를 가정하고 생각해야 한다. 이때 인공지능보다 사람이 더 잘할 수 있는 능력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러한 능력을 키워줄 수 있는 교육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


인공지능 시대에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세 가지 능력

그렇다면, 인공지능 시대에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 사람이 더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많은 학자들은 세 가지를 이야기한다. Curation, Curiosity, Connectivity.


Curation — 생각의 외주화의 함정을 넘어서야

현재 인공지능은 마치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반드시 해줘야 하는 일이 있다. 이는 AI가 제시한 정보에 대한 평가를 하고, 윤리적 책임을 포함한 가치 판단을 비롯하여 최종 의사결정을 하는 일이다. 이러한 능력을 큐레이션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대표적인 큐레이션의 예로는 흑백요리사의 심사위원인 안성재 셰프를 들 수 있다. 그는 수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음식의 종류와 재료, 조리 방법과 의미를 즉각적으로 파악하고, 그 절묘한 균형의 지점을 잡아내어 가치를 평가한다.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능력은 각 분야에서 이러한 큐레이션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이다.

AI는 빠른 속도로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여 정보를 제공하지만, 그 정보의 진위 여부나 편향성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또한 때로는 데이터 자체에는 담기지 않은 윤리적 가치와 사회적 맥락을 포괄하여 의사 결정을 내리는 일도 필요하다. 이는 여전히 사람이 해야 할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에서 경쟁력을 갖춘 인재란 결국 각 분야에서 큐레이션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만약 이 능력이 없다면 인공지능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큐레이션 능력을 갖춘 인재를 키워낼 수 있을까? 특히 생명과학 분야에서는 어떠할까?

바로 여기에서 역설이 등장한다. 큐레이션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능력은 전문적 지식이다. 그리고 전문적 지식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현재와 같은 방식의—효율적 지식 습득에 최적화된—학습 방법도 여전히 필요하다. 물론 이러한 방식이 최선은 아니다. 디테일한 내용을 나열하기보다는 일반 원리에 중점을 두고, 그 일반 원리가 도출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것을 학습의 주요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더 나아가 대학원과 같이 전문 지식을 깊이 있게 배우는 과정을 통해 특정 도메인의 전문성을 갖춰야 경쟁력이 생길 것이다.

또한 큐레이션 능력을 위해서는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필수적이다. 사실 이 부분이 현재 교육에서 가장 약한 지점이라고 보인다. 특히 생명과학 분야에서는 지식의 방대함 때문에 학부 과정까지는 교과서 위주의 일방적인 학습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많은 교과서가 최초 이론이 정립될 때의 학문적 논쟁의 과정은 생략한 채 결론만 제시하다 보니, 비판적 사고의 과정을 다룰 기회가 제한적이다. 이러한 종류의 학습은 그동안 대학원 과정에서 일차 자료를 통해 이루어져 왔는데, 그 일부는 학부에서도 다뤄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여기에 더해, 오늘날 많은 학생들의 AI 툴 사용 방식도 문제로 보인다. 자신도 잘 이해하지 못한 문제를 그대로 질문으로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데 익숙해지고 있다. 더 나아가 생각하는 과정 자체를 귀찮아하고, 질문마저 AI가 만들어주도록 한다. 이렇게 사고 자체를 AI에 외주화하게 되면, 결국 인공지능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용 방식에 대해 개인적인 경계심도 필요하고, 교육 기관 차원의 가이드라인 역시 필요해 보인다.

이를 생명과학 분야에 적용해서 생각해보면, 생명과학 분야에서의 중요한 큐레이션 중 하나는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인공지능 툴은 시간이 갈수록 더 정확한 예측을 하겠지만, 이러한 예측은 실제 세계의 복잡성을 모두 반영한 것이 아니라 특정 변수를 기반으로 한 모델링의 결과이다. 따라서 실제 세계에서 작동하는지에 대한 검증은 필수적이며, 이는 ‘dry lab’이 아닌 ‘wet lab’에서만 가능한 영역이다. 이 지점이 바로 AI 시대의 또 다른 역설-컴퓨터로만 하는 실험이 아닌 몸으로 하는 실험이 중요해지는-이라고 할 수 있다.

큐레이션 파트를 정리하자면, 인공지능이 제공하는 방대한 정보와 예측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문적 지식과 비판적 사고를 바탕으로 그 가치와 한계를 판단하고, 윤리적·사회적 맥락까지 고려하여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인공지능 시대에 사람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핵심 역량이라고 할 수 있다.


Curiosity — 아직 던져지지 않은 질문을 던지는 힘

두 번째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은 호기심을 갖는 일이다. 판도라의 상자의 신화에서도 등장하듯, 호기심은 인간의 근원적인 욕구라고 할 수 있다. 인공지능 시대의 호기심이란 기존 데이터의 패턴을 넘어 새로운 구조와 연결고리를 만들고, ‘왜?’라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누구도 던져보지 않은 질문을 새롭게 던질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인재를 키워내는 것이 중요한 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강의 역시 서구식 수업처럼 질문과 응답이 오가는 보다 자유로운 형태로 변화할 필요가 있으며, 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생명과학 분야에서는 아직 충분히 탐색되지 않은 영역을 공부하는 것이 하나의 경쟁력이 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현재 가장 인기 있고 주목받는 분야에 뛰어들기를 원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연구하지 않는 분야는 재미없게 생각한다. 그러나 미개척 영역은 단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재미없어 보일 뿐, 실제로는 놀랍고 새로운 현상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이러한 분야는 AI가 학습할 데이터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큰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Connectivity —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인간 고유의 경쟁력

세 번째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공감하고 협력하며, 동기를 부여하는 능력이다. 어쩌면 AI가 가장 흉내 내기 어려운 영역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능력을 키워줄 수 있는 교육이 이루어져야만 지속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 능력은 실제로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는 집단 속에서의 경험을 통해서만 길러질 수 있는 측면이 있다. 특히 생명과학 분야에서는 다른 도메인의 사람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할 때 독특한 경쟁력이 만들어진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생명윤리와 같은 가치 판단의 문제들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므로, 이러한 영역에 대한 관심 역시 필수적일 것이다.


맺으며

정리를 하자면, 인공지능 시대의 대학 교육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나 효율적인 정보 습득에 머무를 수 없으며, 큐레이션을 통해 판단하고, 호기심을 통해 새로운 질문을 던지며, 연결을 통해 사람과 협력할 수 있는 인간 고유의 능력을 키워주는 방향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이러한 능력을 길러주는 교육만이 인공지능과 공존하면서도 대체되지 않는 경쟁력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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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생리 발달프로그래밍 연구실

Department of Systems Biology

Yonsei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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