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연구실의 핵심 가치 중 가장 첫 번째가 ‘지속적 성장’이다. 끊임없이 배우고 학습하는 것을 제일의 가치로 여기고 이를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랩의 운영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지속적 학습’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러면서 막연히 생각하기로, 이러한 가치를 추구하는 모습은 아마도 끊임없이 질문하는 태도와 논문을 많이 읽는 모습 혹은 새로운 방법론에 대해 적극적 습득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그런데 ‘학습’에는 무엇인가가 빠져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때 ‘성장’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리고 학습과 성장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면서 이 둘은 적어도 한 가지에 있어서는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곧 통증이다. 성장에는 성장통이 있지만, 학습에는 학습통이 없다. 물론 교과서 내용을 공부하고, 논문을 보며 새로운 방법론을 배우는 것도 상당한 노동과 에너지가 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에, 수고와 노력이 따른다. 그러나 여기에는 ‘나’라는 존재가 직접 관여되어 있지는 않다. 즉, 어떤 논문을 비판을 하더라도 그 논문을 쓴 주체도 내가 아니고, 방법론의 한계를 생각하더라도 그것을 만든 사람이 내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학습과정에는 고통이 별로 없다. 그러나 성장은 다르다. 성장은 내가 변화되는 것이다. 지금의 나로 만족하지 않는 것이다. 나의 생각, 나의 태도, 나의 습관 등 현재의 나의 상태에 대해 만족하면서 성장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나에 대해 비판적으로 봐야하고, 내 생각을 바꿔야 할 수도 있고, 태도를 바꿔야 할 수도 있고, 습관을 바꿔야 할 수도 있다. 이 과정은 고통스러우며 통증이 있게 마련이다.
연구에 있어서는 학습의 부분도 있고 성장의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학부생까지의 과정은 학습의 부분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연구자가 되기 위한 대학원의 과정부터는 성장의 과정이 있고, 성장통이 있다. 단지 연구 뿐만아니라 20대후반-30대초반의 나이에는 많은 성장통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그 과정을 거쳐야만 전문성을 가진 제대로 된 연구자가 될 수 있다.
나무도 자랄 때 시기에 따라 자라는 속도가 다른 것처럼, 성장에도 때가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성장할 수 있는 지점은 역설적으로 내가 성장이 아니라 오히려 후퇴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때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너무 진부하여 그 의미가 오히려 희석되지만, 정말로 성장의 지점은 실패의 자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우리 대부분은 자신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외부로부터 변화에 대한 강력한 신호가 오기전까지 자신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지 않는다. 그런데, 실패의 경험을 통해서, 기존의 내가 해왔던 방식, 삶의 태도, 내 생각과 고집을 돌아보게 되고 비로소 변화를 생각하게 된다. 이 시간은 정말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가장 많이 클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연구의 과정에서도 돌이켜보면, 가장 많이 배웠던 때는 실험이 잘 안될 때였다. 왜 될 것 같은 실험이 안되는 지 붙잡고 논문을 보고 고민을 하는 과정을 통해서, 그 부분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갖게 되었고, 구체적으로 어떠한 조건에서 성공하며 실패하게 되는 지,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 까지도 배우게 되었다.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잘 될 것 같은 일들이 잘 안될 때, 이를 붙잡고 씨름하면서, 내가 고치고 바꿔야 할 생각과 방식과 태도가 보였다.
지속적 성장은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나는 성장하고 있는 가? Safe zone을 벗어나서 도전하고, 고통을 감내하며 가지를 치고 도려내며 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 가? 또 다른 성장의 지점에서 질문하게 된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