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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Jun Young Hong

객관식 문제

학생들의 시험을 채점하면서 알게 된 것은 학생들이 객관식 문제는 정말 잘 풀지만 전체적인 이해가 필요한 서술형 주관식에는 상당히 취약하다는 점이었다. 한 번은 객관식 같은 주관식 문제를 낸 적이 있었는데 한 학생의 답을 찾아가는 논리가 적나라하게 보였다. 왜 C가 답인지는 모르겠지만 A도 아니고 B도 아니기 때문에 ‘소거법’ 에 의해 C가 정답이라는 것이다. 답이 틀리지는 않았지만 원했던 답은 각각의 이유였기 때문에 만점을 줄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문제가 객관식이었다면 만점을 받았을 것이다.


문제는 인생의 중요한 결정이 객관식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수 많은 선택지가 있는 문제들이 앞에 기다리고 있다.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더 많이 주어지게 되면 오히려 결정이 어려워지기도 한다. 누가 나를 대신하여 결정을 내려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또 알게되는 더 큰 문제는 정답이 명확히 없다는 데에 있다. 더 나은 결정을 하려고 노력하다보면 그 우열을 가리기가 굉장히 어렵거나 양쪽 모두 장단점이 명확하다는 문제에 직면한다.


이러한 어려움을 만났을 때 취할 수 있는 쉬운 길은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답이 없는 문제를 정답이 있는 것처럼 만들어버리는 방법이 있다. 선택의 문제가 너무 어렵게 느껴지고 자기 자신도 자기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 하는 지 모르기 때문에 사회에서 좋다고 이야기 하는 것을 ‘선’으로 받아 들이는 것이다. 사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보면 그렇다. 대기업에 취업하고, 비싼 부동산을 소유하고, 돈을 많이 벌고, 유명해지는 절대적인 목표 아래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한다. 왜 그렇게 되고 싶냐고 근본적인 이유를 물어보면 답을 하지 못한다. 사실 자신이 원해서라기 보다는 주변에서 지워준 정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근본적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다. 두 가지 문제가 계속 따라다니는 데, 먼저 이와 같은 목표를 성취하기 전까지는 끊임없이 자신이 실패했다고 생각 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운이 좋아 이러한 ’껍데기‘들을 획득하게 된 이후에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허무함의 문제가 찾아온다. 만족도 없고 행복도 없다.


어렵지만 이러한 문제를 잘 풀어내는 ‘정도’가 있다. 그것은 주관식 문제를 주관식 문제 답게 푸는 것이다. 단순 객관식 문제가 아니고, 명확한 정답이 없을수 있음을 얼른 인정하고 나만의 답을 찾아가는 프로세스를 시작해야 한다. 그것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서부터 출발하여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의 시간으로 연결될 것이다. 그리고 도전하고, 실패하고, 다시 극복하는 과정이 있을 것이다. 물론 쉬운 길은 아니다.


우리나라 대학의 학생들을 보면 학업성취도에서는 매우 뛰어나지만, 아마도 이러한 부분이 가장 약한 것이 아닐까 싶다. 고등학교때까지의 과정이 객관식 문제를 잘 푸는 것에 특화되어 있어서 그러한 것인지, 모든 것을 그러한 객관식 문제처럼 환원시켜 버리고 싶어하는 것 같아 보인다. 많은 학생들이 진로에 대해 고민하지만, 가만히 듣고 있으면 몇 개 중의 하나-의사와 약사와 대기업중 하나-의 고민을 맴돌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것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것이 잘 맞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고, 또 실제적으로 좋은 직업이기 때문이다. 다만, 절대 다수의 사람이 그것을 추구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미국의 톱스쿨의 학생들은 비록 학업성취도에서 우리나라 학생들만큼 뛰어나지는 않을 지라도, 적어도 그들은 자신만의 독특함(uniqueness)을 추구하고, 아무도 가지 않은 선택지라 할 지라도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이것은 일종의 그들의 문화인데, 그것이 참 부럽다. 왜냐하면, 그러한 도전에서만 새롭고 참신한 것들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는 혁신의 중요성은 알고 있지만, 사실 혁신은 이러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적인 문화의 토양에서만 자랄 수 있다. 그래서 이러한 문화가 부럽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사실 나도 그 박스안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어떻게 이러한 정신을 가르치고, 그 문화를 만들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적어도 큰 꿈은 있지만 많은 사람들의 선택지가 아니라는 두려움 때문에 주저하는 학생들이 있다면, 더 응원해주고 싶다. 인생은 객관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답을 써간 사람이 몇 십년이 흘렀을 때 훨씬 멋진 삶을 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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